초록은 동색이라,
한국과 일본의 합작(合作)에는 왠지 마음이 간다.

예를 들면 동아식품과 오츠카제약이 협업해서 만든 동아오츠카. 이 회사는 포카리스웨트를 만들고 있다.
그렇다고 싫어하는 걸 억지로 좋아하는 건 아니다. 애초에 포카리스웨트는 맛있으니까.
일본의 토레타 포지션인 Aquarius도 좋지만, 포카리 쪽이 조금 더 직관적인 맛이다. (아쿠아리우스에는 꿀이 들어간다)

선호하는 건 보관이 쉬운 분말 타입으로, 가루를 물 1리터에 녹이면 간편하게 음료를 만들 수 있다.
대학 2학년에 왕창 입대한 친구들이 휴가를 나올 때마다 PX에서 사 오라고 한 덕분에 한동안은 물 대신 달고 살기도 했다.

포카리스웨트분말

상자는 점선을 따라 꾹꾹 누르면 뜯어진다.
점선은 흰색과 파란색의 경계를 따라 부드러운 곡선 형태다. 로고 느낌이 나는 포인트다.
디자이너가 넌지시 말을 건네는 듯하다. 그거 만들 때 나도 있었어.
왠지 일본인일 것 같다.

드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진동이 손가락에 전해진다. 상자 안쪽은 마분지 느낌의 회색이다.
안에는 5팩이 들어있는데, 은빛이 쨍하고 빛나는 게 우주식량처럼 기술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맨 앞에 있는 녀석을 꺼낸다. 모서리가 꽤 날카롭다.
‘음료베이스’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껌은 껌베이스로 만든다던데 비슷한 걸까?

포카리스웨트분말성분표

뒤에는 빼곡하게 성분이 적혀있다. ‘그레이프후르츠과즙’
이건 ‘그레이프후르츠분말’일 때도 있고 ‘그레이프후르츠혼합분말’일 때도 있다.

이 ‘그레이프후르츠’가 자몽이라는 건 초등학생 때 우연히 알았다.
그때는 엄청나게 당한 기분이었다. 분하다! 포카리스웨트가 자몽 맛이었다니..

​그전까지는 그레이프후르츠의 정체를 막연히 추측만 할 뿐이었다.
일단 후르츠니까 과일인데, 그레이프는 포도. 포도면 포도지 포도과일은 뭐지? 포카리가 포도 맛은 아니니까 청포도인가?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요즘에도 이 단어를 보면 자몽이 아니라 상상 속의 과일이 떠오른다.
하얀 오렌지처럼 생겼다. 자르면 반투명하고 허여멀건 과육이 보인다.
한입 물면 포카리스웨트 과즙이 잔뜩.. 하지만 먹어본 적은 없다.


팩을 가위로 자르고 1L 텀블러에 가루를 쏟아붓는다.
새하얗다. 소금보다는 곱다. 예의바른 설탕같다.

​냉수를 채우고 뚜껑을 꽉 잠근 뒤 통째로 흔들면 편하다.
하지만 이때 열심히 하지 않으면 가루가 덜 녹아서 싱겁다.

중학교 때 배운 용해도를 떠올리면서..
용해 속도인 것 같기도 하고..

다 섞었으면 한 잔 따른다. 컵은 유리컵으로 하자.
컵에 담긴 반투명한 묽은 액체 300ml.

​방금 만들어서 시원한 상태일 때는 한 번에 꿀꺽꿀꺽 마시고 싶다.
그러면 냉기가 식도를 타고 넘어가면서 몸통에서 물을 빨아들이는 느낌이 든다.

​이때 ‘세포에 활력이 채워지고 있다’라고 상상하면 어쩐지 산뜻해져서 좋다.
이온음료가 전해질을 보충한다는 개념에서 생리식염수를 연상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청량감이 지나가면 천천히 뒷맛이 느껴진다.
달지만 어딘가 짭조름한.. 여기에 자몽이 있다 이거지.
그러나 열심히 의식해 봐도 모르겠다.

​계속 마시다 보면 아까워서 천천히 마시게 된다.
물을 조금씩 부으면 더 먹을 수 있지만 싱거워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최적의 지점을 찾는 방법을 고민했었다.
물이 적을수록 진해지니까 좋지만 너무 달아도 재미없어질 것 같으니,

포카리스웨트분말만족도그래프

이런 느낌일 것 같은데, 검증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만족도를 정확히 수치화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만뒀다.
그 정도의 흥미였다.


​역시 1L로 하라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

포카리스웨트메모 2022년의 메모를 지운 날
2025.04.25